초보 부모를 위한 유아전집 고르는 방법

아이 책장 앞에서 먼저 봐야 할 것
얼마 전 지인 집에 갔다가 거실 한쪽을 가득 채운 유아전집을 봤는데,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압도당한 표정이라 살짝 웃음이 났습니다. 전집은 한 번 들이면 책장 자리도 차지하고 비용도 꽤 들어가서, 그냥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고르기에는 아쉬운 선택이 될 수 있어요.
유아전집을 고를 때 가장 먼저 볼 건 권수나 구성품이 아니라 아이가 지금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입니다. 자동차 그림만 보면 멈추는 아이, 동물 소리를 따라 하는 아이, 생활습관 이야기에 반응하는 아이가 다 다르거든요. 같은 3세라도 어떤 아이는 짧은 그림책을 좋아하고, 어떤 아이는 반복 문장이 있는 책을 열 번씩 읽어달라고 합니다.
보통 유아전집은 20권 안팎의 소형 구성부터 60권 이상 대형 구성까지 폭이 큽니다. 처음부터 50권, 60권짜리를 들이면 든든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손이 가는 책이 10권 안팎으로 줄어드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첫 전집이라면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가 뚜렷한 소형 구성이나 중고 단권 몇 권으로 반응을 본 뒤 넓혀가는 쪽이 부담이 덜합니다.
연령보다 발달 단계에 맞추는 방법
전집 광고를 보면 0세, 1세, 3세처럼 연령이 크게 적혀 있는데, 사실 이 숫자는 참고용에 가깝습니다. 같은 네 살이라도 긴 이야기를 따라가는 아이가 있고, 아직 한 장면씩 짚어가며 보는 걸 더 편하게 느끼는 아이가 있어요. 책은 아이에게 살짝 쉬운 정도가 가장 오래 갑니다.
0~2세라면
이 시기에는 이야기 구조보다 촉감, 색감, 반복, 생활 밀착도가 중요합니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많은 책, 밥 먹기나 잠자기처럼 매일 겪는 장면이 나오는 책이 잘 맞아요. 문장이 길면 부모가 줄여 읽어도 됩니다. 책을 끝까지 읽는 것보다 책을 만지고 넘기고 웃는 경험이 먼저니까요.
3~5세라면
이때부터는 생활동화, 자연관찰, 인성동화, 창작그림책처럼 선택지가 확 늘어납니다. 근데 종류가 많아질수록 부모가 조급해지기 쉽습니다. 숫자, 한글, 영어, 과학까지 한 번에 해결하고 싶어지거든요.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재미없는 책이 많아지는 순간 책장은 그냥 가구가 됩니다. 한 분야를 깊게 들이기보다 창작 20권, 자연관찰 10권처럼 성격이 다른 책을 섞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 문장이 너무 길지 않은지 확인하기
- 그림만 봐도 내용을 따라갈 수 있는지 보기
- 아이가 평소 좋아하는 소재가 포함되어 있는지 살피기
- 부모가 여러 번 읽어줘도 덜 지치는 문체인지 보기
새 전집과 중고 전집, 이렇게 비교하면 쉽습니다
유아전집 가격은 브랜드와 구성에 따라 차이가 꽤 큽니다. 새 상품은 구성품이 온전하고 상태 걱정이 적지만, 가격 부담이 큽니다. 반대로 중고는 새 상품 대비 절반 이하로 만나는 경우도 흔하지만, 낙서나 찢김, 누락 권수를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사운드북, 교구, 워크북이 포함된 구성은 빠진 물건이 있는지 꼭 봐야 해요.
솔직히 유아기 책은 아이가 물고, 던지고, 밟고 지나가는 일이 생각보다 잦습니다. 그래서 생활습관 책이나 창작그림책처럼 자주 볼 책은 중고도 충분히 괜찮고, 세이펜 같은 연동 기기가 필요한 책은 호환 여부를 꼼꼼히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음원 지원이 끝났거나 펜 버전이 맞지 않으면 기대했던 기능을 못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고로 살 때는 전체 권수, 빠진 책, 책등 상태, 내부 낙서, 곰팡이 냄새, 부록 여부를 확인하면 실패 확률이 줄어듭니다. 사진이 예뻐 보여도 책장 아래쪽에 오래 보관된 책은 습기 냄새가 날 수 있어요. 아이가 직접 보는 물건이라 상태 확인은 조금 까다롭게 해도 됩니다.
집에 들인 뒤 잘 읽히는 방법
좋은 유아전집을 샀는데 아이가 안 읽는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이건 책이 별로라서라기보다 노출 방식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아요. 책장에 50권을 한꺼번에 꽂아두면 어른에게도 너무 많아 보입니다. 아이에게는 더 그렇고요.
처음에는 5권에서 8권 정도만 눈높이에 꺼내두는 게 좋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반응이 없던 책은 뒤로 빼고, 잘 보는 책은 그대로 남겨둡니다. 이 작은 순환만 해도 같은 전집이 훨씬 새롭게 느껴져요. 아이들은 익숙한 책을 반복해서 볼 때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에 같은 책을 또 읽어달라고 해도 그 시간이 꽤 의미 있습니다.
- 전집 전체를 한 번에 꺼내지 않기
- 아이가 고른 책은 순서가 이상해도 먼저 읽기
- 잠자리, 식사 전후처럼 읽는 시간을 짧게 고정하기
- 책 내용을 생활 속 말로 다시 연결하기
예를 들어 양치 책을 읽었다면 실제 양치할 때 “책 속 친구처럼 입을 크게 벌려볼까” 정도로만 이어주면 됩니다. 학습처럼 몰아가면 아이가 금방 눈치를 챕니다. 책은 공부 도구이기도 하지만, 유아기에는 부모와 붙어 앉아 목소리를 나누는 시간이 더 크게 남습니다.
후회가 적은 유아전집 선택 기준
유아전집을 고를 때 저는 세 가지를 꼭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지금 아이가 좋아하는 소재가 최소 30퍼센트 이상 들어 있는지. 둘째, 부모가 읽어주기에 문장이 자연스러운지. 셋째, 가격을 권수로만 나누지 말고 실제로 1년 안에 얼마나 볼지 상상해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60권 전집이 저렴해 보여도 아이가 10권만 반복해서 본다면 체감 가격은 달라집니다. 반대로 20권 구성이라도 거의 매일 꺼내 본다면 충분히 제값을 합니다. 책은 권수가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 아이 손이 자주 가는 책이 좋은 책에 가깝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전집을 고르려고 하면 선택이 너무 어려워집니다. 아이 취향은 몇 달 사이에도 바뀌고, 부모가 좋다고 생각한 책을 아이가 외면하는 일도 흔합니다. 그래서 유아전집은 대단한 교육 투자라기보다 아이의 현재 관심사를 조금 넓혀주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책장에 빽빽하게 채우는 것보다, 아이가 직접 꺼내 들 수 있는 책 몇 권이 살아 있는 책장에 더 가깝다고 느낍니다.
